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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 책 요약 (8장: 자기 예측)

by librariann 2024. 4. 8.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것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중 하나는 우리 몸과 직접 연결된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마치 우리 몸의 일부처럼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 몸에 대한 소유감, 즉 '이 몸은 나의 것'이라는 느낌은 다른 어떤 물건에 대해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것이죠.

우리의 감정이나 기분도 이런 '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기쁠 때나 슬플 때 우리는 그 감정이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몸이 아닌 다른 것들과는 다른, 살아 있는 존재라는 특별한 느낌을 갖게 돼요. 우리는 이 느낌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살아 있다'라고 느낍니다.

 

일인칭 시점의 경험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는 특별한 관점이 있어요. 바로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 즉 일인칭 시점이죠. 이건 마치 우리 눈앞과 이마 사이, 조금 안쪽의 머리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원근법적 자기'라고 합니다.

이 개념을 정말 잘 보여주는 예시가 있어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가 그린 자화상 <왼쪽 눈으로 본모습>이라는 그림입니다. 마흐는 이 자화상에서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바로 그 시점에서 그렸어요. 마치 우리가 세상을 일인칭 시점으로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그림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인지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자 결심할 때,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때, 이 두 가지 경험 모두 자아의 핵심 부분이에요. 이걸 '의지적 자기'라고 부를 수 있어요. 우리가 종종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자아의 부분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느낌을 소중히 여겨요. 이것은 마치 우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믿음과도 연결돼 있죠. 사람들은 대부분 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것들과는 별개로, 우리가 스스로를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중요한 부분으로 여깁니다. 즉,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죠.

서사적 자기: 과거와 미래를 통한 자기 발견

우리가 자신을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모든 방법은 우리 자신의 이름, 우리의 과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됩니다. 즉,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의 역사와 자전적 기억, 과거의 경험들과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들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과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바람과 계획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의 순간들과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모여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정체성의 기반이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서사적 자기'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은 우리가 단순한 실망을 넘어서 후회와 같은 더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실, 우리는 때로 '예측된 후회'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하려는 행동이 결국 잘못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 행동을 계속하게 되고, 그 결과로 인해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될 것임을 미리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아가 어떻게 여러 개로 나뉘고 서로 상호작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의 정체성은 갖고 있는 감정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며, 이러한 감정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는 우리의 개인적 경험과 선택이 우리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회적 자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자아

사회적 자기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 자신을 위치시키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자기는 어린 시절부터 점차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해, 우리의 인생을 통틀어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합니다.

사회적 자아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범위를 확장시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타인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그들의 반응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부터 자부심, 사랑, 소속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까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자아의 요소들의 결합이 '진짜 나'는 아니다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것은 일상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경험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빨간 의자를 보며 그 색깔과 모양을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인식하듯이, 다양한 자아의 요소들이 하나로 결합하여 '나'라는 통일된 경험을 만들어낸다고 믿곤 합니다. 이러한 통일성은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 오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빨강'을 경험한다고 해서 외부 세계에 '빨강'이라는 색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통일된 자아를 경험한다고 해서 '진짜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통일된 자아의 경험은 언제든지 흩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치매나 심각한 기억 상실증, 섬망과 같은 상태에서는 서사적 자기에 기반한 개인의 정체성이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조현병이나 외계인 손 증후군과 같이 자신의 행동과 연결된 감각이 줄어들거나, 무운동 함구증과 같이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중단되는 상태에서는 의지적 자기가 올바르게 기능하지 않게 됩니다. 유체 이탈이나 환지통, 신체 망상 분열증과 같은 해리성 장애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가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몸의 생존에 초점을 맞춘 신경적으로 암호화된 예측의 복잡한 집합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가 되거나 '당신'이 되는 경험은 바로 이러한 예측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자신이라고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 몸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신경적 예측의 결과일 뿐입니다.

 

'몸을 나로 느끼는' 자아 인식의 불안정성

우리의 몸을 일상의 사물과 동일시하는 경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변화무쌍하고 불안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약 20년 전에 처음 수행된 '고무손 착각' 실험으로, 이제는 체화 연구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이 실험은 참가자가 자신의 진짜 손 대신 고무로 만든 손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되는 현상을 탐구합니다. 참가자는 자신의 실제 손이 숨겨진 상태에서 고무손과 실제 손이 동시에 쓰다듬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이로 인해 고무손을 자신의 몸 일부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 착각은 진짜 손과 고무손에 대한 쓰다듬기가 동시에 일어날 때만 발생하며, 이는 우리의 몸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고무손 착각 실험뿐만 아니라, 유사 유체 이탈 경험을 만들어내는 가상현실 실험도 우리의 몸과 자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러한 실험들은  다른 것을 몸의 일부나 전체로  인식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일인칭 시점의 위치조차도 조작 가능함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유체 이탈 경험은 우리의 자아와 몸,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얼마나 복잡하고 불안정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경험은 물리적 신체를 넘어서는 비물질적 자아나 영혼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아가 신경학적 프로세스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합니다.

 

신체 교환: 가상현실을 통한 공감과 이해의 확장

가상 세계는 우리가 자아와 주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새로운 차원을 추가해 줍니다. 특히, 스웨덴의 연구자 헨리크 에르손이 2008년에 소개한 '신체 교환'이라는 개념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우리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제공합니다. 이 기술은 두 사람이 카메라가 부착된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착용하고, 그들의 시각을 교환함으로써 서로의 몸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특히 두 사람이 악수를 하거나 서로를 바라볼 때 더욱 강화되며, 다중 감각 자극과 하향식 예측이 결합하여 각자가 상대방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이 기술의 응용 프로그램 중 하나는 '공감 생성' 기기로서의 가능성입니다. 가상 신체 교환을 통해 타인의 가상 신체 안에서 세상을 지각하면, 타인의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공감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타인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저자 역시 가상 신체 교환을 경험해 보았는데, 이는 굉장히 설득력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상대방의 몸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특히 거울을 통해 상대방의 이미지를 자신의 것처럼 바라보는 경험은 매우 강렬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자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깊이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자아의 조작과 인식: 고무손 착각부터 신체 교환까지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아의 측면들, 즉 주관적 신체 소유권과 일인칭 관점이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같은 현대 기술을 통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작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고무손 착각 실험에서 우리는 가짜 손이 자신의 신체 일부라는 착각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우리 몸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체 소유권에 대한 실험적 조작은 우리의 지각을 변화시키지만, 그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인식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특히, 최면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착각의 경험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피최면성이 높은 사람들은 신체 소유권에 대한 착각을 더 강하게 경험하는 반면, 피최면성이 낮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는 신체 소유권 착각이 단순한 지각적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더 복잡한 과정의 일부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발견은 신체 망상 분열증, 신체 무결성 장애, 환지통 같은 임상 상태에서 보이는 강력한 변화 경험과 대조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체화와 지각이 뇌가 생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입증합니다. 이런 이해는 우리가 자아와 신체,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러한 연구와 실험은 우리의 신체 소유권과 자아 인식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서사적 자아'를 잃었을 때 함께 잃게 되는 정체성

일상에서 우리는 순간부터 시작해 하루, 한 주, 한 달, 심지어 우리의 일생 동안 자신이 계속 같은 사람임을 느낍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이름, 과거의 추억, 앞으로의 계획들과 자신을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해요. 이 높은 수준의 자아 인식은 우리가 어릴 때나 다른 동물들도 경험하는 기본적인 '나'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본적인 '나'는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을 때조차 느낄 수 있는 것이에요. 대부분의 성인은 여러 형태의 '나'를 하나로 느끼는데, 이런 지속되는 우리의 이야기나 사회적인 부분이 줄어들면 그 영향은 정말 큽니다.

예를 들어 클라이브 웨어링 씨는 영국에서 아주 유명했던 음악가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는 옛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새로운 일들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그는 마치 매 순간마다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의 이야기는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클라이브 씨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는 여전히 자신의 몸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음악을 할 때는 자신을 완전히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 대부분에게 너무도 당연한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근본적 느낌은 없었습니다. 자기를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자아'를 잃었을 때 함께 잃게 되는 정체성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도 사회적 동물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해요. 이를 '마음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능력은 인간에게 천천히 발전하지만,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끔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할 때가 있어요. 이때 우리는 사회적 자아를 더 잘 알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깊게 생각하지 않을 때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도나 신념, 욕망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이것이 우리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줍니다.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최근에 나온 사회신경과학 같은 여러 분야에서는 사회적 이해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연구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예측하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와인 잔을 내미는 걸 보면, 친구가 와인을 더 마시고 싶어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어요. 이런 사회적 이해는 우리가 물건을 보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에요.

이런 사회적 이해는 우리 뇌가 예측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우리 뇌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바탕으로 상황을 예측하려고 해요. 사회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과 반응을 예측하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행동을 조정합니다.

 

변화하는 자신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나 '변화맹'

사실 우리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연속적이고 통일된 '나'를 경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의 '자기 주관적 안정성'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기억뿐만 아니라, 우리 몸이나 정체성에 대한 깊은 느낌을 통해서도 이런 안정성을 느낍니다.

밖을 바라보는 경험은 계속 변하지만, 자기에 대한 경험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아요.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변한다는 것을 사진 등의 증거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해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중심처럼 느껴집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항상 같은 몸'이라는 느낌을 경험한다고 말했어요.

우리가 자신의 몸이나 행동, 일인칭 시점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보다 덜 변한다고 느끼는 것은 놀랍지 않아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변화의 경험 자체가 우리의 지각과 추론에서 나온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자신의 변화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이 '변화 맹점'은 우리가 자신을 변하지 않는 실체로 잘못 인식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진화적으로 우리가 자기를 일정하게 느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어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에요. 우리는 자신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자기를 인식합니다.